쉼이 곧 깨달음

朝文报 2025年01月17日

잡념은 명상의 짐과 같다. 그런데 짐은 무조건 나쁜 것일가? 운동선수들은 모래주머니를 차고 뛰는 훈련을 한다. 근력과 순발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듣자하니 모래주머니를 떼고 나면 운동선수들은 날아갈 것 같은 해방감을 맛본다고 한다. 몰라보게 가벼워진 자신의 몸에 스스로 놀라는 것이다.

잡념은 명상에서 모래주머니 역할을 한다. 물론 명상의 궁극목적은 잡념을 버리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는 필수적으로 잡념을 받아들여야 한다.

숨을 관찰하고 있으면 수없이 많은 잡념들이 머리를 스쳐갈 것이다. 그럴 때면 무작정 잡념을 걷어내려고만 하지 말고 잡념의 내용이 무엇인지 기억해두라.

메모를 해도 좋다. 잡념은 마치 물의 흐름을 막는 바위와도 같다. 수시로 찾아오는 잡념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 근원을 쫓아가보면 곤곤한 슬픔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명상의 목적은 자비심을 갖는 것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자신과의 화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상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상처난 자리를 무작정 덮기만 해서는 외려 병이 깊어진다. 례를 들어 다리에 염증이 생겼다고 치자. 제대로 치료를 하려면 염증이 난 곳을 소독해야 한다. 때로는 염증의 뿌리를 도려내야 한다. 염증이 재발하지 않도록 항생제를 먹어야 하는 때도 있다.

만약 염증이 난 곳이 보기 흉하다는 리유로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거즈만 붙인다면 염증은 급속도로 번질 것이다. 급기야 나중에는 다리를 잘라야 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마음의 상흔도 마찬가지다. 무작정 숨기고 덮을 게 아니라 원인이 무엇인지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갈대 다발 속 갈대들처럼 서로 엮여있다. 갈대밭을 떠올려보자. 바람이 불면 갈대밭은 일시에 우수수 넘어진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다시 일어선다.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넘어지게 하는 것도 옆의 갈대이지만 일어서게 하는 것도 옆의 갈대다. 인간관계도 갈대 무리와 다르지 않다. 상처를 준 것도 타인이지만 상처를 치료해주는 것도 타인일 수 밖에 없다.

‘당신도 나처럼 많이 아팠구나.’ 이 사실을 깨닫게 되면 미움의 대상도, 화의 대상도, 분노의 대상도 모두 련민의 대상으로 바뀐다.

타인에 대한 련민이 마음 속에 싹트면 잡념이라는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이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 탁한 눈에 비친 세상은 탁할 수 밖에 없다.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눈이 맑아지고, 세상이 맑게 보인다.

알고 보면 세상엔 예쁜 것들이 참 많다. ‘쉼이 곧 깨달음’을 떠올려보라. 많은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