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코스프레는 그만! 고부 사이에 낀 남편의 전략

朝文报 2023年11月24日

얼마 전 대학 선배와 카톡으로 이야기를 나누다 최근 나의 근황을 전했다. “어머니와 같이 살기 시작하니 여러가지 일들이 생기네요. 고부 관계는 좋은 편입니다. 지혜로운 어머니와 정이 많은 아내 덕분입니다.”

대학선배가 답을 보내왔는데 한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대단한 결정을 했네. 그런데 외아들로 홀어머니를 평생 모시고 살았던 나는 참으로 힘들었네. 28살에 결혼해 22년간 같이 살면서 어머니와 아내의 갈등이 그친 적이 없었네. 홀어머니를 박대할 수 없는 외아들과 아내를 리해해주어야 하는 남편 립장에서 나의 두 감정은 처절한 싸움의 련속이였네. 다시는 이런 쓸데없는 감정으로 인생을 소모하지 않도록 결혼한 아들은 바로 분가시켰네. 조만간 소주나 한잔하세.”

부모와 같이 사는 것이 일견 바람직해보이지만 누구에게는 삶을 질곡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 족쇄를 차야 하는 사람이 시어머니나 아내 혹은 아들중 특정인으로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상황에 따라 누구든 될 수 있고 반대로 모든 사람이 자유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어머니와 아내의 사이가 좋은 편이지만 같이 산지 겨우 일년을 넘겨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고부갈등 없이 어머니 뿐만 아니라 아내와도 잘 지내기 위해 중간에 낀 아들인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일년이 지나면서 내 나름대로 노하우를 찾아가고 있다. 물론 이러한 것이 모든 가정에 보편적으로 해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각자 상황이 다르니 노하우 또한 다를 수 밖에 없다.


효자 코스프레 하지 않기

내가 너무 효자노릇을 하면 어머니의 기대치가 커지고 아내가 힘들어질 것이다. 어머니가 필요한 일상사는 아내가 주된 보호자가 되여 도와주고 있다. 나는 어머니 방 청소와 쓰레기 버리는 정도만 한다. 어머니가 보기에 아들은 말수 적은 서먹한 사위 같고 오히려 아내가 사근사근 이야기도 잘한다. 어머니가 친해져야 할 사람은 아들이 아니라 며느리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중이다.


부부의 결정권은 아내에게

어머니가 상의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내가 아닌 아내가 나서도록 하고 있다. 어머니의 협상 파트너는 아내다. 가끔 어머니와 아내가 의견 차이로 이야기가 분분해도 나는 나서지 않는다. 어머니는 아내와 견줄 소통과 협상 능력을 갖추고 있다. 대부분은 어머니가 아내의 의견을 경청하고 아내가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를 잘 설명해 어머니를 설득시키는 선에서 마무리가 된다.


아내의 살림에 잔소리 하지 않기

집안 살림, 식사 준비, 외식, 쇼핑 등 어머니에 관련된 내용이 다소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아내에게 잔소리하지 않는다. 아내가 잘할 뿐더러 어머니가 나와 단둘이 있을 때 아내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거나 험담을 한 적이 없으니 나 또한 그럴 리유가 없다.


아내를 이전보다 잘 해주기

평상시 만점 남편은 아니여도 잔소리 안하는 무던한 남편이라는 생각은 해왔다. 어머니와 살림을 합치면서 조금은 더 나은 남편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부부싸움이 시작돼도 집 안에서 언성을 높이기 어렵다는 데 있다. 예전 같으면 진즉 큰소리가 오갔을 법한데 어머니 깰가 무서워 조용조용 부부싸움 하려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부부싸움은 소리 지르며 해야 제맛인데 무슨 련인 사랑 속삭이듯 싸움하려니 희극배우가 따로 없다. 게다가 내가 큰소리를 낼 수 없다는 사실을 눈치챈 아내가 부부싸움의 수위를 높이면 ‘어머니 믿고 저러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부부싸움 회수가 줄어든 것을 보면 어머니는 주무시면서도 당신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팔순 로인의 표현에 익숙해지기

아내는 어머니가 본인을 무시하거나 싫어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고 한다. 어머니의 어휘와 말투에서 가끔 오해가 일어난다. 한번은 어머니가 식사를 챙겨주는 아내에게 “얘야, 네가 참 고생이 많구나. 너도 귀한 집 딸이고 식모도 아닌데 이렇게 매번 식사를 준비해주어 참 미안하고 고맙구나” 했다. 어머니는 나름 칭찬한다고 한 말인데 아내에게는 섭섭하게 들린 모양이다. 88세인 어머니는 조금전 ‘식모’라는 단어를 사용했는지 조차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고맙다는 표현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휘가 아닌 음절의 높낮이도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감탄소리가 비아냥거림으로 들릴 수 있다. 이러한 일이 자주 일어나지는 않지만 이제는 아내나 나 또한 많이 익숙해져 어머니의 말투나 어휘에 연연하기보다 전체적인 뜻을 새겨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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